데미안(Demian) |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 안인희 옮김 | 문학동네


- 부제: 청춘 이야기



누구나 한번쯤 '데미안'을 만나고

누구나 한번쯤 '데미안'이 된다! 


데미안이 1919년 출간되었으니 벌써 100년쯤 된 것인데, 오래된 역사와 명성에도 난 그동안 읽어보지 못했다.

'헤르만 헤세'도 '데미안'도 여기저기서 들어보긴 했는데, 데미안 이라는 뜻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고전이 주는 힘을 알고 싶다. 현대적인 것과 고전적인 것을 번갈아가며 읽으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많은 고전 중에서도, 데미안을 읽어 보려고 했던 이유는 자주 가는 블로그 또는 여러 인터뷰 등에서 언급 되는것을 봐왔기 때문이다.

그토록 많은 찬사를 받는 이 책을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였다.


독서록을 매주 의무적으로 써야 했던 초등학교 6학년 때, 

때문에 나는 원하지 않아도 책을 읽어야 했다. 빨리 읽을 수 있는 책, 읽기 쉬운 책 들을.

누가 독서록을 많이 쓰는가 시합을 하듯. 경쟁 심리에 의한 책 읽기.

그러다가 독서록을 쓰기 위해 어느날 우연히 펼쳐본 죄와벌이라는 책은 나에게 이해하기 어렵고 지루했던 책이었다.

어렸을 때 고전을 읽는 이유는 읽고 싶었다기 보다는 고전을 읽음으로 남들에게 멋져 보이고 싶은 이유가 더 맞을 지도 모르겠다.

내가 죄와 벌이 읽고 싶었기 보다는 독서록을 쓰기 위해였던 것 처럼.

주객이 전도된 목적은 어려운 책을 끝까지 읽어나갈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될 수 없었다. 

그 때부터 아마 나는 고전과 멀어졌다.


초등학교 6학년, 중 2,3학년 때는 그나마 책을 조금 읽었었는데.. 

그 때를 제외하고는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책을 멀리 했었다. 어렸을 때는 딱히 책을 읽을 필요성을 못느꼈던 것 같다.

아이러니 하게도 국어라는 과목은 언제나 나에게 공부를 하지 않아도 어느정도 기대한 성적을 가져다 주었으니..

그러나 어른이 되서 가끔 생각해 보면 책을 많이 접했더라면, 많이 읽었더라면,

지금 내 모습과 내 생각들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다.


여기 저기서 추천하는 필독서 리스트 같은 것들을 보다 보면 세계 문학등과 같은 고전들의 제목들이 많은 수를 차지한다.

한결 같이 드는 생각은 추천 리스트의 책들을 학생들이 읽었을때 내용을 다 이해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나 할 까 이다.

먼 훗날 내 자식들은 어려서부터 책 읽는 습관을 들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또 그런 습관을 꼭 만들어 주고 싶다.

그러나 추천 도서 리스트의 책들을 읽어라 강요할 생각은 조금도 생기지 않는다.

양서의 구분은 필요하겠으나 관심이 가는 책을 읽어야 재미있고 느끼는 것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데미안의 책 뒷부분 부록의 토머스 만이 쓴 영문판의 서문에 이런 내용이 있다.

"이것은 작은 책이다. 하지만 크기가 작은 책들이 때로 가장 강력한 역동성을 만들어낸다."


맞다. 책을 처음 집어들었을 때 두께가 얇아서 쉽게 읽을 수 있을것 같았는데,

역시 고전의 무게는 무겁다. 이해하며 읽어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데미안이 특별한 뜻이 담긴 명사 같은 건줄 알았는데.. 인물 이름이라는 것도 의외였고,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할 무렵은 싱클레어의 성장기를 다룬 성장 소설인가 했었는데 그렇지만은 않았다는 점이 의외 였다. 

책의 많은 부분에서 철학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는 소설 이기도 했다.

책이 전개 되면서 나오는 기독교 적인 내용들, 싱클레어의 꿈에 대한 해석, 1차 세계 대전의 시대적 배경 등을 이해 하기 위해 

다른 시선으로 생각하는 것과 가끔은 추가적인 공부(검색)도 필요로 했다.

한 번에 책 전체,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이해 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책이 전달하려고 하는 내용과 느끼는 바는 분명하다.


'너 자신만의 길을 가라'. 

확실한 메세지를 받는 다는 것. 책을 읽으며 얻을 수 있는 쾌감중에 하나가 아닐까?


누구나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한다. 

나이가 들어가고 경험이 풍부해져도 항상 수 많은 갈림길에서의 선택은 어렵기만 하다. 

그래서 가끔은 나 대신 선택과 삶의 방향을 결정해 주는 길 안내자가 있었으면 하고 생각해 본다.

나도 싱클레어이고 그래서 데미안을 만나기를 원한다.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데미안이 내 앞에 나타나 길을 안내 해주기를 바란다.

궁극적으로 나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데미안이 되기를 꿈꾼다.

아직은 싱클레어의 모습이지만, 어쩌면 계속 싱클레어로 살아가 결국 싱클레어로 마칠 지도 모르지만

언젠간 나도 데미안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이 책은 어릴 때 보다는 대학생때나 성인이 되서 보았으면 좋겠다. 

어릴때 보면 이해 하기 어려워서 이기도 하나 자신에 대해 고민할 때. 

그 때야 말로 책이 제 역할을 할 적기 일 것이기 때문이다.



"『데미안』은 개성화 과정(개인의 내부에 있는 고유성의 실현)을, 곧 개성의 형성을 강조합니다. 

개성의 형성이 없으면 더 높은 삶도 없지요."


"우리 시대는 더 섬세한 젊은이들을 힘들게 합니다. 어디서나 인간을 획일화하려 하고, 그들의 개인적 특성을 가능하면 잘라내려 합니다. 영혼은 그에 맞서 항거하는데 그건 정당한 일이죠. (...) 그것을 진지하게 여기는 사람은 그런 체험들을 극복하고, 그가 강한 사람이라면 그는 싱클레어에서 데미안이 되는 것입니다."

- 헤르만 헤세의 편지 중- 




인간은 누구나 저 자신일 뿐만 아니라 세상의 현상들이 교차하는 지점, 단 한 번뿐이고 아주 특별한, 어떤 경우에도 중요하고 특이한 한 지점이다. 단 한 번만 그렇게 존재하는, 두 번 다시는 없는 지점이다. 그래서 각자의 이야기는 소중하고 영원하고 거룩하며, 그래서 어쨌든 아직 살아서 자연의 의지를 충족시키는 인간은 누구라도 극히 주목할 만한 경이로운 존재인 것이다. (p8)


모든 사람의 삶은 제각기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길의 시도이며 좁은 오솔길을 가리켜 보여주는 일이다. 그 누구도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이 없건만,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애쓴다. (p9)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을 가는 것보다 사람이 더 싫어하는 일은 없다는 것을! (p57)


그가 자신만의 공기에 둘러싸여 자신만의 법칙에 따라 살면서 낯설고도 고독하고 조용히, 마치 별처럼 그들 사이를 걷는 모습이 보인다. 아무도 그를 사랑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와 가까이 지내지 않았다. (...) 그는 좋은 학생이긴 했지만 누구의 마음에 들려고 애쓰지 않았다. (p62)


다르게 볼 수도 있으며 거기에는 비판이 가능하다는 어떤 깨달음이었다! (p65)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게 아니야. 다른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걸 생각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그 사람에게 내가 원하는 걸 생각하게 할 수도 없어. 하지만 누군가를 잘 관찰할 수는 있지. 그러면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또는 무슨 느낌을 갖고 있는지 이따금 상당히 정확하게 말할 수 있게 돼. 그럼 다음 순간에 그가 무엇을 할지도 대개는 예측할 수 있게 되지. (...)

동물이든 사람이든 모든 주의력과 모든 의지를 특정한데 집중하면 거기 도달하는 거야. 그게 다야. 네가 한 말도 정확히 바로 그 말이지. 어떤 사람을 충분히 면밀하게 바라보렴. 그러면 그에 대해 그 자신보다도 더 잘 알게돼. (p68, 69)


그 소원이 내 안에 온전히 들어 있어야만, 정말로 내 존재 전체가 그 소원으로 가득채워져 있어야만 그걸 강력히 원하고 또 실천할 수 있는 거야. 정말 그런 경우라면, 그러니까 네 내면으로부터 막을 수 없이 솟구쳐올라오는 것을 시도하면, 그건 이루어진다. (p70)


나의 문제가 모든 인간의 문제이며 모든 생명과 사유의 문제라는 깨달음이 불현듯 거룩한 그림자처럼 내게로 밀려들었고, 나의 극히 개인적인 삶과 생각이 위대한 사념들의 영원한 흐름에 얼마나 깊이 동참하고 있는지를 갑자기 느끼면서 경외감이 나를 덮쳤다. 그 깨달음은 왠지 인정받는 듯한 만족스러운 느낌을 주긴 했지만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가혹했고, 어딘지 알알한 뒷맛을 남겼다. 그 안에는 책임의 울림이, 이제 더는 아이가 아니며 홀로 서야 한다는 울림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p76)


넌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있어. 만일 그렇다면 넌 네가 생각한 대로 아직 한 번도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다는 걸 안다는 얘기지. 그건 좋지가 못해. 우리가 살아내는 생각만이 가치가 있어. (p76)


그래서 우리 모두는 제각기 무엇이 허용된 것인지, 무엇이 금지된 것인지를 알아내야 하는 거야. 자기에게 금지된 것을 말이지. 물론 금지된 것을 전혀 행하지 않고도 대단한 악당이 될 수가 있지. 그 반대도 가능하고, 그것은 본래 그냥 편안함의 문제야! 너무 편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재판관이 되지 못하는 사람은 그저 금지된 그대로를 따르지. 그게 편하니까. 다른 이들은 자기 안에서 스스로 계율을 느껴. 그러면 모든 명맘있는 사람이 매일 행하는 일들이 그에게는 금지되기도 하고, 또 보통은 엄금되어 있는 다른 일들이 허용되기도 해. 누구나 저 자신으로 홀로 서야 하니까. (p77, 78)


세상이 나 같은 인간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세상이 그런 인간들을 위해 더 나은 장소, 더 높은 과제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나 같은 인간들은 망가지는 법이다. 손실이야 세상이 입겠지. (p93)


네 안에서 네 삶을 만드는 것은 그걸 이미 알고 있겠지. 그걸 아는 건 좋은 일이야. 우리 안에 누군가가 있어서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모든 것을 우리 자신보다도 더 잘한다는 사실 말이야. (p104)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삭스다. (p110)


나는 이제 다 자란 인간이었는데도 어쩔 줄 모르고 목적도 없었다. (...) 어쩌면 나도 언젠가 그런 뭔가가 되겠지만, 그게 뭔지 내가 어찌 알겠는가. 어쩌면 여러 해 동안 찾고 또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다음에도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떤 목적지에 도달하긴 하지만 그것이 사악하고 위험하고 끔찍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로지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에 따라 살아가려 했을뿐. 그것이 어째서 그리도 어려웠을까? (p115)


그리고 이제 마침내 한 조각 삶을 살아봤으면, 내안에서 무언가를 세상으로 내보냈으면, 세상과 관계를 맺고 투쟁도 해봤으면 하고 간절히 원했다. 이따금 저녁에 거리를 걸으며 불안한 마음으로 한밤중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때면 나는 이렇게 생각하곤 했다. 이제는, 정말 이제는 내 애인을 만나게 되리라. 그녀가 다음 모퉁이를 지나가고 있으리라. 다음 창문에서 나를 불러주리라. (p117)


누가 무언가를 꼭 필요로 하는데 제게 꼭 필요한 그것을 찾아낸다면, 그것은 우연이 가져다준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그 자신의 갈망과 필연성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것이다. (p117)


자네 자신도 도덕가가 되어선 안 되는 거야!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게. (...) 예감들이 나타나면, 영혼 안에서 목소리가 말을 시작하면 그 소리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고, 그것이 선생님이나 아버지 또는 그 어떤 신에게 어울리는 일일까 묻지 말게! 그런 질문은 자신을 망칠 뿐이니까. 그랬다가는 보행자 도로를 걸으면서 화석이 되고 말지. (p132)


우리는 우리 안에서 매일 세계를 새롭게 만들어야 해. 안그랬다간 우린 아무것도 아니게 되니까. (p135)


우리가 보는 것들은. 우리 안에있는 것과 같은 것들이야. 우리 안에 있는 현실 말고 다른 현실은 없어.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토록 비현실적으로 사는 거지. 자기 밖의 모습들을 현실이라 여기고, 자기 안에 있는 본래의 세계가 발언할 수 없게 하니 말이지. 그렇게 해서 행복할 수도 있어. 하지만 한번 다른 것을 알게 되면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을 선택하지는 않게 되지. 싱클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은 쉽지만 우리의 길은 어려워. 자. 우리 함께 가보세. (p137)


깨어난 인간에게는 단 한 가지. 자기 자신을 탐색하고, 자기 안에서 더욱 확고해지고, 그것이 어디로 향하든 자신만의 길을 계속 더듬어나가는 것 말고는 달리 그 어떤, 어떤, 어떤 의무도 없다. (p153)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진정한 소명이란 오직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그것뿐이다. (...) 그의 과제는 멋대로의 운명이 아닌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 내면에서 완전하고도 끊임없이 그에 따라 사는 것이다. (p154)


누구나 자신의 꿈을 찾아내야죠. 그러면 길이 쉬워져요. 하지만 언제까지나 지속되는 꿈은 없어요. 지난 꿈을 밀어내고 새로운 꿈이 나타나죠. 그 어떤 꿈도 꼭 붙잡으려 해서는 안 돼요. (p171)


우리는 이미 깨어난 사람들, 또는 깨어나는 도중의 사람들이었다. 우리의 열망은 점점 더 완전한 깨어 있음을 향했다. 그에 반해 다른 사람들의 열과 행복 찾기는 자신들의 의견, 자신들의 이상과 의무, 자신들의 삶과 행복을 점점 더 패거리의 그것에 밀착시키는 일로 향했다. 그곳에도 열망이 있고, 그곳에도 힘과 위대함이 있었다. 하지만 표를 지닌다고 여기는 데 반해서, 다른 사람들은 지속의 의지 속에서 살았다. 그들에게 인류는 - 그들도 우리처럼 인류를 사랑했다 - 완성된 것. 그래서 유지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인류는 먼 미래였다. 우리 모두 그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도중에 있으며, 그 미래의 모습을 아무도 알지 못하고, 그 법칙은 그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았다.  (p174)


우리 각자가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는 일, 자신 안에서 작동하는 자연의 소질에 완전히 어울리게 되어 자연의 의지에 맞게 사는 일. 불확실한 미래가 가져오는 것이 무엇이든 그에 대한 각오를 다지는 일만이 우리의 의무이며 운명이라고 느꼈다. (p176)


너는 내 안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럼 내가 네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거야. (p198)


내가 이따금 열쇠를 찾아내 나 자신 안으로 완전히 내려가면 그곳 어두운 거울에서 운명의 모습들이 잠들어 있었다. 그럼 나는 검은 거울 위로 그냥 몸을 숙여 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면 되었다. 그 모습은 이제 완전히 그와 같았다. 내 친구이며 길 안내자인 그 사람과. (p199)



데미안
국내도서
저자 :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 안인희역
출판 : 문학동네 2013.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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