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

일의 기쁨과 슬픔(THE PLEASURES AND SORROWS OF WORK) | 알랭 드 보통 | 정영목 옮김 | 이레


가끔은 재미있고 그보다 자주 도망치고 싶은 '일' - 책날개에서..





암튼 나름의 내 일의 역사적 배경에서 큰 축을 이뤘던 이런 고민들은 나름의 방식들로 정리되었고 

나에게 정리된 중간 산출물을 주었다.

잠시 시간을 멈춘 지금까지도 아직도 이런 고민들은 계속 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을 안다.

왜냐하면, 여전히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생각들에서 일이라는 키워드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시점에서의 일에 대한 생각의 전환 또는 새로운 정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책들 중 일에 관련된 3권의 책을 골랐고, 

그 책들을 읽기로 결심했으며 두 편의 TED 동영상을 봤다.

그 중 제일 첫번째로 읽은 책이 바로 이 책,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책이다.

침대 맡에 호기롭게 읽을 순서대로 3권의 책을 쌓아놨는데....

감기라는 변수도 있었고 무기력에 시달리는 것과 동시에 독서를 제외하고 

여가 활동의 딴짓들을 많이 하고 지내서 본의아니게 책을 찔금 찔금 읽게 됐다.

(이번에는 정말 문학을 읽으려고 했는데..이번에도 실패다. 3권을 다 읽고 꼭 문학을 읽어야 겠다.)

책을 읽을 때, 읽는 책을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기 바라는가? 무엇을 얻었으면 좋겠는가?

보통은 이런 책을 읽을 때면 사전에 책을 통해 내가 얻고 자하는 답에 대한 형태를 생각해보고 그것을 얻기를 기대한다.

이제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책의 장르는 자기계발서가 아니었다. 제목은 꼭 자기계발서의 아우라를 내뿜는데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에세이다. 일하고 에세이라.. 참 어울리지 않는 단어 조합이라고 생각 했다.

알랭 드 보통은 이 책이 다양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18세기 도시 풍경화 처럼 보이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의 바람에 걸 맞게 책의 내용은 그저 관찰자의 시점에서 관찰 일지를 쓰듯 써내려가져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을 통해서 독자는 보물 찾기 하듯 깨달음을 발견할 수도 있고, 

보물을 발견하지 못한채 허탕을 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구입하고 바로 읽었다면 아마 지금처럼 긍정적인 만족감을 얻지는 못했을 것 같다.

나는 어떤 것을 얻기 위해 책을 본 것이 아니었다.

그저 순수하게 궁금했을 뿐이다.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일의 기쁨과 슬픔이 진정 뭔지가 알고 싶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나름 내 일을 해왔고, 풍파를 겪으며 느끼고 생각하는 시간을 지나왔기에 

내가 경험한 것 들을 바탕으로 책의 내용을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예전이 아닌 지금 시기에 이 책을 읽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의 출판사는 부도의 아픔으로 없어져서 지금은 다른 출판사에서 책이 발간되고 있다.

찾아보니 책 표지도 바꼈는데..왠지 책의 출생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아 그 점에서도 이상한 뿌듯함을 느꼈다.

비록, 알랭 드 보통이 쓴 많은 책들 중 이 책이 그렇게 인기 있지는 않는 것 같지만

나는 다른 직업군의 사람들의 생활들과 생각들에 대한 내용에 큰 매력과 재미를 느꼈다.

물론 꽤나 꼼꼼히 기록한 관찰일지 같은 책에 나오는 가보지도 못했으며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겠는 지역 이름이나 , 

만나보지도 못했고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 이름이거나, 주변에서 본적도 들어본적도 없는 제품명 등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고 본다면 매우 읽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그런 부분은 그냥 흘러가듯이 냅두자. 나도 이런게 잘 안되는 사람중에 하나이지만 이번에는 했다.

이 책은 독자에게 보물 발견의 자유를 준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순수하게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들여다보다보면 

덤으로 원하지 않던 뜻밖의 보물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지루할 것 같았지만 꽤 재미있었고, 내 고민들에 대해 완벽하진 않겠지만 새로운 중간 산출물 같은 해결책을 주었기 때문에

누군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한다면 또 그 사람이 이 책을 읽어 볼 의향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도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One: 화물선 관찰하기

자신이 구입하는 물건이 어디에서 태어나 어떤 여행을 했는가 하는 문제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상상력이 풍부한 몇 사람은 판지 상자 바닥에 남은 약간의 물기, 컴퓨터 케이블에 인쇄된 희미한 코드에서 제조와 운송 과정에 관한 어떤 암시를 받을지 모른다. 그리고 물건 자체보다도 그것이 더 고상하고 신비롭다고, 또 더 놀랍고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p19)

그럼에도 부두는 결코 진부하게만 보이지 않는다. 거대한 바다와 비교하면 사람은 늘 아주 작아보인다. 그래서인지 머나먼 항구 이름만 나와도 그곳에 펼쳐지는, 우리가 여기서 알고 있는 삶보다 훨씬 생생할지도 모르는 다른 삶에 대한 혼란스러운 갈망을 느끼게 된다. (...) 실제로는 그런 곳들 역시 권태와 훼손에서 자유롭지 못하겠지만, 멀리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한동안은 혼란스러운 행복의 백일몽응 지탱해줄 수 있는 것이다. (p20)

혹시 만물박사가 사라진 것에 슬픔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시대가 특정한 업무, (...) 업무에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장인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슬픔이 좀 덜어질지도 모르겠다. (p24)

어떤 분야든 노동하는 세계에 깊은 존경심을 표현하면 이상하게 여기는 근거 없는 편견 때문이다. (p29)

항구의 삶을 연구하는 데 쏟는 그들의 열정은 종종 예술을 대하는 태도와 비슷하다. (p29)

배를 관찰하는 사람들은, 비록 자기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우리시대의 가장 놀라운 측면 몇가지는 예민하게 의식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 세계의 무엇이 화성인이나 아이의 관심을 끌지 알고 있다. 그들은 현대의 집단적인 정신이 부여주는 광대한 지성 앞에서 스스로의 보잘것 없음과 무지함을 느끼는 순간 기쁨을 맛본다. 항구에 정박한 배 옆에 서서 머리를 위로 젖히고 이물의 첨탑들이 하늘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샤르트르 성당의 버팀벽 앞에 선 순례자들과 마찬가지로 말없이 경이감을 느끼고 흡족해 한다. (p31)

그들은 호기심이 강렬하게 자극을 받으면 남들 눈에 이상하게 보인다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p31)

사실 이들은 좋은 직업의 요건에 관한 관습적인 관념을 뒤집는다는 점에서 아이 같은 면이 있다. 그들은 늘 어떤 직업의 물질적 혜택보다는 그 일 자체가 주는 재미를 더 높이 평가한다. (p31)

배를 관찰하는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는 방식은 근대 이전 여행자들의 습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노동 현장을 관찰하는 것이 무대나 교회 벽돌을 구경하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32)

그들에 비하면 우리 대부분은 얼마나 무지한가.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기계와 공정을 어렴풋이밖에 알지 못한다. (p33)


Two: 물류

현재 우리는 많은 물건을 실제로 손에 넣을 수는 있지만, 그런 물건들의 제조와 유동 과정이 어떠한지는 전혀 상상할 수 없다. 이런 소외 과정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경이, 감사, 자책감을 경험할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박탈당한다. (p39)

물류 허브를 그냥 보기 흉하다고만 묘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곳에는 현대 세계의 많은 작업장의 특징인 무시무시한 아름다움, 영혼이 없고 흠도 하나도 없는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p43)

초콜릿 바, 시리얼, 생수, 매트리스, 마가린이 어둠 속에서 북쪽으로 조금씩 나아간다. 그 광경은 어떤 면에서는 강물처럼 위로를 주기도 한다. 끊이지 않고 움직이는 그림자와 흐름이 보는 사람의 마음에서 정체된 분위기를 걷어내기 때문이다. 그것은 흘러 지나 가는 삶 자체다. 다만 박테리아나 정글 식물의 확산을 차단할 때와 같은 냉정한 의지를 부여받아, 가장 무심하게, 잔인하게, 이기적으로 표현되고 있을 뿐이다. (p44)

물류 단지에서 펼쳐지는 일은, 스스로 깨닫지 못한 채 이곳이 혜택을 입고 있는 우리 대부분을 수동적인 역할로 몰아넣는다. (p45)

실제로 상자에 담긴 물품의 잊힌 오디세이를 관찰하고, 창고의 은밀한 삶을 목격하다 보면, 우리가 일상생활의 흐름 속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소비하는 물건들과 그 미지의 기원이나 창조자 사이가 어긋나고 있다는 느낌, 사람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그 독특하게 현대적인 느낌을 어느 정도 덜어낼 수 있다. (p53)


Three: 비스킷 공장

세밀하게 나누어놓은 분업은 감탄할 만한 수준의 생산성을 낳았다. (...) 이런 완벽한 사회에서는 모든 일이 전문화 되기 때문에 아무도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게 될 날이 올것이다. (p85)

다양한 직업으로 세분화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큰 이익을 주는지는 몰라도, 그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생기지는 않는지 궁금해진다. (...) 그결과로 얻은 삶이 얼마나 의미있게 느껴지는지 묻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히게 된다. (p86)

일이 의미 있게 느껴지는 건 언제일까?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자아내거나 고통을 줄여줄 때가 아닐까? 우리는 스스로 이기적으로 타고났다고 생각하도록 종종 배워왔지만, 일에서 의미를 찾는 방향으로 행동하려는 갈망은 지위나 돈에 대한 욕심만큼이나 완강하게 우리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듯 하다. (...) 우리가 그저 물질만 생각하는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라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미있는 일이라는 개념을 너무 좁혀서, 의사나 콜카타의 수녀나 과거의 거장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추앙받지 않으면서도 다수에게 보탬이 되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p86, 88)

진짜 문제는 (...) 그 일이 (...) 계속 확장되고 분화된 뒤에도 여전히 의미있게 여겨지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일은 오직 제한된 수의 일꾼의 손에서 활기차게 이루어질 때에만, 그래서 그 몇몇의 일꾼이 자신의 작업 시간에 한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상상하는 순간에만 의미 있게 보일 수도 있다. (p88)

16세기에 발전한 프로테스탄트의 세계관은 일상적인 일의 가치를 회복하여고 하여, 겉으로 보기에 하찮은 일도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영혼의 고귀함을 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구도에서라면 공장에서도 수도원만큼이나 겸손, 지혜, 존경, 친절을 진지하게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구원은 가톨릭이 특권을 누리던 웅장하고 신성한 순간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생활의 수준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었다. (p106)

비스킷 영업의 핵심에는 의미가 있다고 받아들여줄 만한 명령, 긴급한 동시에 단순한 명령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 그것은 생존이다. 노동자는 살아남으려고 노력하라는 오래된 임무에 전념하고 있다. 이것이 주로 주변적인 욕망의 만족에 기반을 두고 있는 소비자 경제에서는 공교롭게도 어릿광대짓과 쉽게 혼동될 수 있는 일련의 행동으로 나타날 뿐이다. (p109)

이 모든 제품의 제조와 홍보는 게임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노력으로서, 한때 원시 공동체 전체의 운명이 걸려 있었던 수돼지 사냥만큼이나 심각한 것이었고, 따라서 그만큼 존중해주고 위엄을 부여해줄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p110)

이 얼마나 독특한 문명인가. 엄청나게 부유하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작고 또 아주 작은 의미밖에 없는 것들을 팔아 부를 늘리는 문명, 돈을 쓸만한 가치가 있는 목적과 돈을 버는 메커니즘 - 종종 도덕적으로 경멸스럽고 또 파괴적인 메커니즘 -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켜 분별력 있게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문명. ( p112)

이 사회는 우리의 진지하고 의미심장한 요구와 관계가 없는 산업, 수단의 진지함과 목적의 하찮음 사이의 괴리를 피하기 어려운 산업, 그 결과 컴퓨터 터미널 앞과 창고 앞에서 우리를 의미 상실의 위기로 몰아넣기 십상인 산업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나는 우리 노동의 진부함을 생각하며 희미한 절망감을 느끼다가도, 거기에서 나오는 물질적 풍요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겉으로는 유치한 게임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이 우리의 생존 자체를 위한 투쟁과 절대 거리가 멀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p114)


Four: 직업 상담

현대의 일하는 세계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결국 내적인 것으로서 우리 정신의 한 측면을 구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일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널리 퍼진 믿음이다. 일을 중심에 둔 것을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일이 형벌이나 속죄 이상의 어떤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처음이다. 경제적인 필요가 없어도 일은 구해야 한다고 암시하는 것도 우리 사회가 처음이다. 직업 선택이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새로 사귀게된 사람에게도 어디 출신이냐, 부모가 누구냐 묻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고 묻는다.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길로 나아가려면 보수를 받는 일자리라는 관문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는 가정이 깔려 있는 것이다. (p116)

자신을 보러 오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가장 흔하고 도움이 안되는 착각이 하나 있다고 말했다. 그저 남들하는 대로 평범하게 살기만 하면 그 과정에서 어떻게 해야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이냐 하는 문제에 관한 직관을 얻을 수 있다고 당연시하는 착각이다. (...) 그런데 자신은 어떤 잘못이나 어리석음 때문에 그런 직관을 얻지 못했고, 그 결과 '소명'을 이행하지 못하고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에 남아 괴로워한다. (p124)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그것은 보기 드물고 얻기 힘든 심리학적 성과다. -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 동기부여와 인격 (p125)

돈과 지위에 대한 걱정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진정으로 자신이 택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능력을 소멸시켜버렸기 때문이다. (p125)

그와 상담을 하러 오는 사람들은 스스로 적성을 찾을 때 마치 금속 탐지기를 들고 땅위를 걸어가는 보물 사냥꾼처럼, 그가 '기쁨의 삐삐 소리'라고 부르는 것이 들리지 않나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시집을 넘기다가 거룩한 목소리의 명령을 듣는 것이 아니라, 도시 변두리의 주차장 꼭대기에서 고요한 골짜기를 덮은 안개를 보다가 그 삐삐 소리를 듣고 자신의 진정한 관심이 시에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아챌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치가는 어떤 정당에 소속되거나 나라를 운영하는 방법을 깊이 이해하기 오래 전에 먼저 가족의 두 구성원 사이의 균열을 성공적으로 치유하다가 분명한 신호를 들을 수도 있다.(p126)

질투가 없으면 자신의 욕망을 인정할 수 없었다. (p127)

능력주의적인, 또 사회적 이동이 심한 현대 사회에서 사람의 지위는 자신감, 상상력,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몫을 설득하는 능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출세를 할 가능성 때문에 금욕과 체념의 철학들은 환영받지 못할 수도 있다. 시끄럽게 부추겨대는 소리를 들을 만큼 자신이 저급하다고 믿지 않기 때문에 <성공하겠다는 의지> 같은 제목이 붙은 책을 고자세로 경멸했다가 필생의 기회를 놓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종의 비관주의적 자부심 때문에 인생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p134)

직업 결정처럼 장차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일이 우리 사회에서는 (...) 주변으로 밀려난 상담사들의 손에 방치되어 있다는 것이 이상하고도 안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직업가운데 하나여야 할 일이 여행사 정도의 지위라도 얻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으니. 그러나 어쩌면 이 일이 이렇게 무시당하는 상황은 상담사들이 결국은 인간 본성을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적절하게 반영할 것일 뿐인지도 몰랐다. 잠재적 고객들의 답에 대한 굶주림, 그 이해할 만한 굶주림 떄문에 이런 상담사들 다수가 지나친 약속을 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p140)

우리 현실의 지도를 다시 그리려면 특별한 탄력, 지성, 행운이 필요하다. 결국 위대함이라는 봉우리의 양옆에는 성취를 이루지 못한 괴로운 독신자들이 모여 사는 언덕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기 마련이다. 우리 대부분은 찬란한 성취의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고 서서, 목표에 가까이 다가온 것은 맞지만 아직은 저편이 아니라 분명히 이편에 서 있으며, 사소하지만 핵심적인 여러 가지 심리적 결합(약간 지나친 낙관주의, 날 것 그대로 나타나는 반항심, 치명적인 인내심 부족이나 감상주의)으로 인해 현실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한다. 우리는 아주 작은 부품이 없어 활주로 옆에서 꼼짝도 못하는, 그래서 결국은 트랙터나 자전거보다도 더 느린 존재가 되어버린 첨단 비행기와 같다. (p141)

모두가 일과 사랑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너그러운 부르주아적 자신감 안에 은밀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배려 없는 잔혹성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 두가지에서 절대 충족감을 얻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충족감을 얻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뜻일 뿐이다. 예외가 규칙적으로 잘못 표현될 때, 우리의 개인적 불행은 삶에 불가피한 측면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저주처럼 우리를 짓누르게 된다. (...)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운명에서 갈망과 오류를 위해 마련된 자연스러운 자리를 부정하여, (...) 우리는 어떻게 해도 진정한 나 자신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 혼자만 박해와 수모를 당한다는 느낌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p142)


Five: 로켓 과학

우리 행성의 원료들을 조작하고 재결합해서 하늘에 바치는, 그러나 하늘도 깜짝 놀랄 제물을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 정신의 사고 능력이었다. (p157)

현대 과학계의 삶이 개인적 에고의 제한 또는 말살을 의미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개인적 영광의 기회는 없었다. 전기가 기록되거나 일반인이 기억할 만한 이름으로 남을 전망이 없었다. 이것은 어떤 한 사람도, 심지어 어떤 상업적 또는 학술적 조직도 명예를 독차지할 수 없는 집단적 기획이었다. 천재들이 관측소나 작업장에서 일로매진하여 과학사의 방향을 바꾸던 시절은 지나갔다. 우리는 천재물리학자와 항공 엔지니어들이 어느 한 사람을 우리 시대의 갈릴레오로 띄우려는 미디어의 시도에 저항하면서 공동 실험실에서 작은 수수께끼를 10년 동안 함께 공략하는 소박한 시대에 들어섰다. (p157)

천재들의 시대가 지나가면서 화려함과 소설적 잔재미는 물론 사라졌다. 그러나 우리가 그 시대를 졸업하고 집단적 노력의 시대로 들어서면서 전보다 더 나아지고 더 편해진 면도 생겼다고 볼 수 있다. (...) 예측 불가능한 변수에 좌우되어 위기에 빠지는 일은 앞으로 두 번 다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p159)

불꽃 과학자는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담담해 보였다. 사실 그는 역사상 어떤 통치자보다도 큰 힘을 휘두르고 있었다. (...) 힘은 무절제한 무력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었다. 그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맹렬한 힘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일을 맡은 과학자의 규율이 잡혀 있는 침착한 권위였다. (...) 본능을 조심해서 억제하고 있었고, 세심한 실험실 규칙은 그의 충동들을 잘 관리하고 있었다. 현대의 전능함은 이토록 고요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자연은 19세기에 걸쳐 숭고한 느낌을 자아내는 주된 촉매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기술적 숭고함의 시대로 깊이 들어왔다. 숲이나 빙산이 아니라 슈퍼컴퓨터, 로켓, 입자 가속기가 가장 강렬한 경외감을 자아내는 시대인 것이다. 우리는 이제 거의 우리 자신에게만 놀라고 있다. (p184)

과학 이전의 시대에는 아무리 부족한 것이 많다 하더라도 어쨌든 인간이 이룬 모든 성취는 우주의 장대함에 비추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데서 오는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기계 장치에서는 그들보다 축복을 받았을지도 몰라도 세계관에서는 그들보다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똑똑하고, 정확하고, 맹목적이고, 도덕적으로 혼란을 일으키는 동료 인간들 외에는 달리 딱히 숭배할 대상이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선망, 불안, 오만의 느낌들과 씨름하게 되었다. (p188)


Six: 그림

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나무의 뭔가가 자신을 그림으로 그려달라고 외치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 일을 제대로만 해내면 그의 인생도 막연하기는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구원을 받고, 그의 곤경들도 승화될 것 같았다. (...) 일을 할 때 그는 사각형의 캔버스를 움직이는 하나의 정신, 하나의 손에 지나지 않는다. 물감을 섞고, 그 색깔을 세상과 비교하여 확인하고, 그것을 격자의 할당된 장소에 정착시키는 작업을 하다 보면 과거와 미래는 사라진다. (p196)

테일러는 미술관 벽에서 스승들을 발견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위대한 거장들은 관대하다. 500년 뒤에 태어난 제자에게 기법과 관련된 지혜를 나누어주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일반 미술관 관람객에게는 움직이지 않은 오락물로 여겨질 수도 있는 작품이 화가에게는 살아 있는 처방이 된다. (p198, 199)

그는 자신의 그림이 우리를 닮지 않은, 우리를 넘어선 모든 것으로부터 태어난다고 보며, 또 그런 것들을 숭배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란다. (...) 그의 관심은 우리가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공감하고 상상하려고 노력을 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들, 말 그대로 미리 볼 수 없기 때문에 예측도 할 수 없는 자연환경에 끌렸다. 그가 헌신적으로 나무를 바라보는 것은 자아를 옆으로 밀어놓고, 우리와는 다른 것, 우리를 넘어선 모든 것을 인식하려는 시도다. (p203)

일반적으로 우리의 노력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물리적 상관물을 찾지 못한다. 우리는 거대하지만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집단적인 기획들 속에서 희석되고, 그러다 보면 작년에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궁금해진다. 더 깊은 수준에서는 우리가 어디로 간것이고, 도대체 무엇이 된 것인지 궁금해하다가 결국 퇴직 기념 파티 같은 분위기에 젖어 우리의 사라진 에너지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세상의 한 부분을 자기 손으로 바꾸는 장인에게는 모든 것이 얼마나 달라 보일런지. 그는 자신의 작업이 자신의 존재로부터 발산되는 것을 볼 수 있고, 하루를 마치고 또는 한 생을 마치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하나의 대상 - 그것이 네모난 캔버스든 의자든 도자기든 - 을 보며 그것이 그의 기술들의 안정된 저장소이고 그가 보낸 세월의 정확한 기록임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이미 오래전에 손에 쥐거나 눈으로 볼 수 없는 무로 증발해버린 기획들로 띄엄띄엄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군데 다 모여 있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p206)

그렇다고 그가 늘 예민하고 인내심 있는 관찰자인 것은 아니다. 그의 사회적 자아는 약한 데가 많다. (...) 그러나 그는 이젤 앞에 서면 전혀 오만하다는 느낌 없이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순간에 그의 동료는 동네 술집에서 함께 술을 마시는 술친구들이 아니다. 그리고 그 자신도 이제는 우체부와 가게 점원 사이에서 태어난 무일푼의 아들이 아니다. 그는 티치아노의 둘도 없는 친구인 동시에 상속자다. (p206)

그의 그림은 우리가 이미 본 것을 눈여겨보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 예술이란 중요하지만 무시되어온 방향으로 우리 생각을 밀어붙이는 모든 것을 가리키는 말인지도 모른다. (p208, 210)

위대한 예술 작품은 어떤 것을 깨우치는 특성이 있다. (...) 동시에 그림은 우리 정신의 잊고 있던 측면들과 신비하게 결합될 수 있다. (p210)

지난 2년을 돌이켜보면, 테일러는 변변치 못한 배관공의 1년 수입 정도를 벌어들였다. 평소의 우리 모습보다 더 우아하고 지적인 대상을 창조하기 위하여 기꺼이 희생하는 인간 본성의 비실용적 측면을 보는 듯하다. 테일러는 자신에 운에 기가 죽지 않는다. (p214)

"물을 본 적 있어요?" 테일러가 묻는다. "제대로 본적이 있냐는거죠?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처럼." (p214)


Seven: 송전 공학

인간 개성의 수만큼이나 많은 철탑 디자인이 있고, 나아가서 우리의 눈은 살과 피를 가진 동료들을 평가할 때와 똑같은 몇 가지 기준으로 이 움직이지 않는 구조물을 평가하는 습관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이 첨탑들에서 겸손과 오만, 정직과 변덕의 여러 형태를 찾아 냈다. (...) 송전 엔지니어들은 말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이상적인 친구나 연인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심리적, 신체적 덕목들로 사람들의 무의식을 자극하는 첨탑을 만들어내는 일에 도전하고 있는 듯했다. (p223)

인간이 이룬 혁신 가운데 엄청난 희생과 재주를 요구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p224)

나도 모르게 나머지 인류도 엔지니어의 예를 따라 잘 잡히지 않고 쉽게 증발해버리는 고통스러운 심리 상태를 논쟁의 어지없이 지시할 수 있는 일련의 상징에 동의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런 부호가 있으면 우리가 침울해지는 일도 드물어지고 외로움도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말없이 몇 가지 방정식만 빨리 교환하고 나면 논쟁이 해소될 것 같았다. (p230)

현대에서는 어디에서든 곤혹스러운 상황이 생기면, 그곳의 전기가 어디에서 왔는지 궁리하며 잠시나마 그 상황을 잊을 수 있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p233)

어렸을 때부터 이미 잘 확립되어 있는 기술에 감탄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 과학기술의 역사가 어떤 혁신이 도입된 시점만이 아니라 그것이 잊힌 시점, 너무 익숙해져서, 조약돌이나 구름처럼 평범해지고 딱히 눈에 띌 만한 구석이 없어져서 집단의식에서 사라져버린 시점을 확인하는 데도 유용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p234)

전류는 흘러가는 과정에서 최고의 자선을 베푼다. 소비자들이 전류에 관하여 어떤 생각도 할 필요가 없게 해주기 때문이다. (p250)


Eight: 회계

공중의 넓은 관점에서 보자면 회계는 관료적인 지루한 일과 동의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수에 관한 재능이 특별하게 밀집되어 있는 이곳은 동지애, 지능, 무익함이 흥미롭게 뒤섞여 있어 사무실의 여러 가지 매력의 사례를 연구하기에 적당하다. (p259)

발광과 파국에 이른 것이 분명한 이 이야기들은 역설적으로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런 것들과 비교할 때 우리는 제정신이고 복을 받았다고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이야기들에서 고개를 돌리면서 우리의 예측 가능한 일상을 확인하고 안도감을 느낄수 있다. 우리가 욕망을 단단하게 묶어둔 것이 너무도 감사하고, 놀라운 자제력을 발휘하여 우리 동료를 독살하지 않고 친척을 앞 마당에 묻지 않은 것이 너무도 자랑스럽다. (p265)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자유의 끝이라는 뜻이지만, 동시에 의심과 집념과 변덕스러운 욕망의 끝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p266)

동료들이 그 직책을 근거로 나에 관하여 가정하는 것들이 나를 제어해주는 덕분에 새벽의 외로움 속에서도 과거에는 가능했지만 이제는 결코 가능하지 않은 것들을 생각하지 않게 되니 얼마나 만족스러운지. (p266)

사무실에서 하루가 시작되면 풀잎에 막처럼 덮인 이슬이 증발하듯이 노스탤지어가 말라버린다. 이제 인생은 신비하거나, 슬프거나, 괴롭거나, 감동적이거나, 혼란스럽거나, 우울하지 않다. 현실적인 행동을 하기 위한 실제적인 무대다. (p267)

회계사에게 자신들이 하는 일을 설명해달라고 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그들은 일반인이 보이는 호기심에는 반드시 조롱이 숨어 있다고 느낀다. 졸업 후 이런 직업을 선택했다고 처음 밝힌이래 넒은 세상에서 자주 마주치던 익숙한 것이 또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참으면, 그들의 조건 반사적인 자기 비하가 점차 사라지면서 미로 같은 일을 정복한 것에 대한 진지한 자부심이 나타난다. (p269)

역사는 영웅담을 길게 이야기 할지 모르지만, 결국 우리 가운데 몇사람만 먼 바다에 나가고 다수는 항구에서 밧줄을 헤아리고 닻의 꼬인 사슬을 풀지 않는가. (p270)

그들에게 지속적인 유산으로 남을 만한 일을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 다급한 내부의 기획 또는 병이나 그로 인한 고통때문에 그 일을 미룰 수는 없다. 그들은 낯선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싶은 야망도, 둔감하고 덧없는 미래를 위해 자신의 통찰을 기록해두고 싶은 야망도 없다. 그들은 망각을 순순히 받아들일 만큼 잘 조정이 되어 있다. 감사 업무에 불멸을 위한 기회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우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p270, 271)

일을 하는 사람이 단지 겁에 질리거나 체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만족감을 느껴야만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일들이 등장하면서 고용의 규칙을 새로 써야 했다. (...) 피고용자의 정신적 복지가 관리자들의 최고의 관심사가 되기 시작했다. 세계의 유리 타워 사무실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외적 힘에 대한 공포를 무기로 삼아서는 진행시킬 수 없다. (p272)

일터의 역학이 가족 관계만큼이나 복잡하고 갑자기 격렬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있다. 아니, 가족생활보다 외려 더 어려운 면이 많다. (...) 사무실 생활은 보통 명랑함이라는 가면뒤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동료들이 계속 일으키는 분노와 슬픔에 대처할 준비가 부족한 사람들이 안타까울 정도로 많다는 것이 그 이유다. (p274, 276)

현대의 사무실은 수만 명의 직원들이 자기들끼리 제대로 의사소통을 해야만 돌아가는 생각들의 공장이다. 그렇게 돌아가야만 난폭하고 부담스러운 고객들의 요구를 이행할 수 있다. (p276)

대통령은 "모두가 탁월한 수준을 향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러다가 "만일 실패한다 해도, 적어도 과감하게 큰 일을 하다가 실패했으니, 그의 자리는 승리나 패배가 무엇인지 모르는 차갑고 소심한 영혼들 사이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 시어도어 루스벨트 연설문 (p279)

돈을 버는 것은 결국은 다른 일을 하기 위한 구실일 뿐임을 강조해줄 뿐이다. (...) 우리는 돈을 벌기 오래전부터, 늘 바빠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식했다. 우리 행동의 더 큰 목적을 고민하지 않으면서 그냥 벽돌을 쌓고, 컨테이너에 물을 넣었다 빼고, 모래를 한 구덩이에서 다른 구덩이로 옮기는 일이 주는 만족감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p292)

사무실에서 돈은 수녀원의 신과 마찬가지다. 육체적 욕망을 성희롱 정책의 언어로 단죄하든 아니면 죄와 사탄이라는 표현으로 단죄하든, 그 욕망은 이단에 필적하는 것으로 치부된다. 감히 정전에서 규정하는 목표를 부인하고, 뻔뻔스럽게도 세상에 주식 가격이나 구원자보다 더 귀중한, 더 절실한 요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p294)

오늘은 무엇을 이루었을까? (...) 이런 성취들은 시간이 지나면 틀림없이 그 의미가 어느 정도 퇴색할 것이다. (p295)

사무실 문명은 커피와 알코올 덕분에 가능한 가파른 이륙과 착륙이 없었으면 존립할 수 없을 것이다. (p298)


Nine: 창업자 정신

현재의 비능률과 소망 속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새로운 사업 가능성들이 숨어 있다. 우리 욕구의 의미심장한, 어쩌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을 충족시키는 방법은 아직도 상업의 매커니즘에 묶여 있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p303)

창업자 정신은 현재의 질서는 가능한 것들만 보여주는 믿을 수 없고 겁쟁이 같은 지표라는 믿음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관행이나 제품이 없다는 것이 창업자들에게는 옳게 보이지도 않고 불가피한 상태로 보이지도 않는다. 단지 집단적 순응의 결과로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증거일 뿐이다. 그러나 창업자들이 처한 환경은 까다로운 재정적, 법적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다른 인간들이 실제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것을 요구한다. 상상력과 현실적 태도 사이에서 절묘하게 그 어려운 균형을 잡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균형이 드물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어디선가 용기를 얻어 창업의 길로 나서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이 매우 불길하게 느껴진다.(p310)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는 생각이 현대적인 성취라는 개념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이런 개념은 잘나가는 창업자들을 찬미하는 방식으로 부각되며, 여기에 그들만큼 성취하지 못한 동료들의 파산과 드물지 않은 자살에 관한 상대적 침묵이 결합된다. (...) 현대에는 회사의 창업이 우리의 이상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p311)

창업자의 활동에 수반되는 자본과 희망이 화려하게 박살나는 데에는 어떤 영웅적인 아름다움이 있었다. (p312)

창업자들은 적어도 인간 본성 가운데 고집스러우면서도 명예로운 측면을 구현해냈다는 점에서는 칭찬을 받을만 하다. 이런 본성 때문에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결혼을 하기도 하고, 마치 죽음이 피할 수 있는 조건인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그들은 우리가 권태와 안전보다는 흥분과 파국을 훨씬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p313)

흔히들 좋은 생각은 바보라도 할 수 있으나, 수익이 나는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은 위대한 정신을 가진 소수뿐이라고 말한다. 영국 발명가협회 회원들은 이 냉혹한 방정식을 뒤집어놓은 것 같았다. (...) 이 발명가들은 창업자 정신에 입각하여 아이디어들을 정리해내는 활동을 비전 있는 사람이나 하는 활동의 지위로 격상시키고 있었다. (...)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유토피아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p315)

그가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한 가지 영역은 불안인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의 평범함에서 무자비하게 흠을 잡아내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점이 도드라졌다. 이것을 보면 어떤 종류의 지능은 사실 그 핵심이 단지 남들보다 불만을 잘 느끼는 능력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p319)

우리는 모든 인간 특질이 조화를 이루어서, 우리가 아름다운 동시에 사려 깊고, 주도면밀한 동시에 느긋하고, 재능이 있는 동시에 균형이 잘 잡혀 있을 수도 있다는 관념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p319)

그는 자신이 고려하게 된 모든 사업 분야에서, 자신과 같은 사람에게는 성공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 그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재정과 산업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인공물, 우리가 종종 지구의 자연적인 특징들만큼이나 불가피하다고 가정해버리는 인공물을 먼데서 이루어지는 알 수 없는 과정의 산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대체로 비슷한 사람들, 운명은 자신이 만든다고 믿는 대담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노력을 기울인 결과물로 보았다. (...) 그는 어떤 풍경을 내다보든 그것을 만든 존재는 신이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라고 확신했다. (p319, 320)

비전을 가지고 상상을 펼치는 사람과 보브 경의 가장 좋은 면을 합치자 이상적인 창업자상 같은 것이 나타났다. 성격으로 보자면 유토피아적인 면과 실용적인 면이 적절하게 결합되어, 중요한 욕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관료제나 재정과 관련된 까다로운 문제도 성공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야 그런 욕구의 해소에 제도적 형식을 부여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이론만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주게 된다. (p323, 324)

이런 이상은 상상의 영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 그들의 만개하던 공상은 이익도 남고 의미도 있는 현실적인 영역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p324)

우리(그러니깐 니체의 말처럼 아직 나 자신이 되지 못한 많은 수의 우리)는 혼자 있을 때면 우리가 해보고 싶어하는 여러가지 일을 그려보면서 스스로 세상을 더 낫게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우리 안에 깊이 자리 잡은 어떤 열망과 통찰에 창업이라는 형식을 부여하고 싶은 인간적 충동은 태어날 때부터 평생 동안 끈질기게 지속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p324, 325)


Ten: 항공 산업

우리는 가끔 별들을 쳐다보지만, 기본적으로 또 도전적으로 땅에 묶여 있는 피조물들이었다. (p348)

현대에 죽음에 대한 생각이 과거와 달라진 것은 죽은 뒤에도 기술과 사회가 계속 혁명적 변화를 겪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우리 노동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을 도저히 유지 할 수가 없다. (p360)

할 일이 있을 때는 죽음을 생각하기가 어렵다. 금기라기보다는 그냥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긴다. 일은 그 본성상 그 자신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면서 다른 데로는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일은 우리의 원근감을 파괴해버리는데, 우리는 오히려 바로 그 점 때문에 일에 감사한다. (...)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근시안적으로 행동한다. 그 안에 존재의 순수한 에너지가 들어있다. 밤이 올 때쯤이면 죽을 것이라는 커다란 사실을 외면한채, 서둘러 칠한 붓이 남긴 페인트 한 방울을 피해 창턱을 계속 열심히 가로지르려는 나방에게서 볼 수 있는 강렬하고 맹목적인 의지가 있다. (p364, 366)

우리의 하찮음과 약함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 뻔하고, 너무 잘 알려져 있고, 너무 지루해서 되풀이할 필요가 없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의 과제가 넓게 보면 분명히 말이 안 되는 것임에도, 확고한 결의와 진지함으로 그 과제에 다가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과장하고자 하는 충동은 지적인 오류이기는 커녕 사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생명력 자체라고 할 수 있다. (p366)

우리 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보고 현재를 역사의 정점으로 보는 것, 코앞에 닥친 회의가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묘지의 교훈을 태만히 하는 것, 가끔씩만 책을 읽는 것, 마감의 압박을 느끼는 것, 동료를 물려고 하는 것, "오전 11:00에서 오전 11:15까지 커피를 마시며 휴식"이라고 적힌 회의 일정을 꾸역꾸역 소화해 나아가는 것, 부주의하고 탐욕스럽게 행동하다가 전투에서 산화해버리는 것 - 어쩌면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생활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p366)

우리의 모든 기획의 궁극적인 운명을 직접 목격한다면, 우리는 바로 몸이 마비되어 버릴 것이다. (p368)

우리의 일은 적어도 우리가 거기에 정신을 팔게는 해줄 것이다. 완벽에 대한 희망을 투자할 수 있는 완벽한 거품은 제공해주었을것이다. 우리의 가없는 불안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성취 가능한 몇 가지 목표로 집중시켜줄 것이다. 우리에게 뭔가를 정복했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품위 있는 피로를 안겨줄 것이다. 식탁에 먹을 것을 올려놓아줄 것이다. 더 큰 괴로움에서 벗어나 있게해 줄 것이다. (p368)


일의 기쁨과 슬픔
국내도서
저자 :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 정영목역
출판 : 은행나무 2012.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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