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獨白)

- 류근, 상처적 체질 중에서


차마 어쩌지 못하고 눈발을 쏟아내는

저녁 하늘처럼 내게도 사랑은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다.


밀린 월급을 품고 귀가하는 가장처럼

가난한 옆구리에 낀 군고구마 봉지처럼

조금은 가볍고 따스해진 걸음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오래 기다린 사람일수록

이 지상에서 그를 알아보는 일이

어렵지 않기를 기도하며,

내가 잠든 새 그가 다녀가는 일이 

없기를 기도하며,

등불 아래 착한 편지 한 장

놓아두는 것이다.


그러면 사랑은 내 기도에 날개를 씻고

큰 강과 저문 숲 건너 고요히

내 어깨에 내리는 것이다.


모든 지나간 사랑은 내 생애에 진실로

나를 찾아온 사랑 아니었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새처럼 반짝이며 물고기처럼 명랑한

음성으로 오로지 내 오랜 슬픔을 위해서만

속삭여주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깨끗한 울음 한 잎으로 피어나

그의 무릎에 고단했던 그리움과 상처들을

내려놓고 임종처럼 가벼워진 안식과 몸을

바꾸는 것이다.


차마 어쩌지 못하고 눈발을 쏟아내는

저녁 하늘처럼 젖은 눈썹하나로

가릴 수 없는 작별처럼...


내게도 사랑은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다.


새벽별 숫눈길 위에 새겨진 종소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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