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의 천재들 | 정혜윤 | 봄아필


나는 이들을 '사생활의 천재들'이라 부른다.

사생활이란 카프카의 말을 다시 빌리자면 우리에게 있는 유일한 인생, 일상들을 말한다.

이들은 그런 사생활에서 천재다. 사생활을 보여주는 데서 천재들이 아니라 사생활을 살아내는 데서 천재들이다.

그들은 진부하고 시시하지 않게 살려고 애쓰는데서 천재다. 

그들은 자기 삶에 던져진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으로 존재한다.

그들은 자기 삶의 문제를 직면하는 데, 그것을 푸는 데, 그것에서 보편성을 보는데 천재적이다.

즉, 그들은 삶의 태도에서 천재다.

그들은 다시 시작함에서 천재다. 누군가는 말했다. 회복기 환자처럼 살고 싶다고. 

그들은 나를 회복기 환자 혹은 재활 훈련을 받는 환자로 만든다.

우리는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다시 배우고 익히고 습관을 고쳐야 한다. 

다시 시작한다는 말은 자신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줘보는 것이다. 

우리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말을 한다. 그러나 가지 않은 길을 가는 법에 대해선 이야기 하지 않는다. 

가지 않은 길을 걷는 것에 대해, 그 출발점의 모습에 대해 황활하게 이야기 하는 것이 다시 시작하는 것의 시작이다. 

- 본문 중에서 




읽고 싶은 책들은 대게 우연히 발견된다. 

지인들의 추천을 통해서나 심심해서 온라인 서점 사이트를 살펴보다가, 심지어 책을 읽는 중에서도.

요즘은 더 심심해지면 새벽에 지식인의 서재, 명사의 서재, 빨간 책방을 뒤적거려 보기도 하는데 

그렇게도 간혹 읽고 싶어지는 책들과 만나게 된다.

읽지는 않았지만 침대와 책이라는 책을 통해 정혜윤이라는 사람을 알았다.

작가의 직업이 라디오 PD인 것도 특이한데 엄청난 독서광이라는 사실 또한 독특했다.

그러다가 명사의 서재를 보다가 누구였는지 생각은 안나지만;;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잉여 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론의 책인줄 알고 책 소개와 목차를 살펴보게 된 것 같다.

책은 인터뷰집이었고, 인터뷰이들 중 몇 명 안되지만 익숙한 이름이 있어서 들려줄 얘기들이 궁금해서 책을 샀다.

"어렵다. 그럼에도 좋다." 가 책을 읽고 난 후 느낀 바였다.

느낀 것도 많고 덕분에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도 된 것 같다. 

나는 책을 읽어가며 한가지 기준이랄까 큰 가지를 잡고 읽어나가며 생각을 하고, 정리를 한다.

그러나 이해가 쉽지 않은 부분도 있어서 한참 이해를 하려고 읽다 보니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지 하는 생각이 종종 들어서 

어느 부분에서는 흐름을 놓칠 때도 종종 있었던 것 같다. 

아직도 사실 이해를 제대로 못한 부분이 있는 것 같긴 하다. 이건 내 능력 부족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이, 인터뷰어의 얘기들은 역시 좋았다.

특히 자연 다큐감독 박수용, 영화감독 변영주, 만화가 윤태호, 야생영장류학자 김산하, 청년운동가 조성주 씨가 들려주는 

내용이 인상 깊었다.

인용된 책들 중 어려운 내용의 책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일전에 읽었던 책은 도끼다의 저자 박웅현 씨도 그렇고 

정혜윤PD도 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어려운 내용을 착착 해석하는 재주가 참 놀라웠다.

이런 책들도 몇 권씩 쓰는 것도 참 놀라운 재주다. 나는 고작 이 포스팅 하나를 끝맺는 것도 참 힘든데 말이다.


처음 사생활의 천재들의 제목에서 떠올렸던 이미지와 책의 내용은 완벽히 다른 내용이었지만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다.

나도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인생, 일생을 잘 느끼고 잘 살아내는 사생활의 천재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엔 손가락이 아프고 스크롤이 매우긴 글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인상 깊었던 문구들을 기록하려 한다.

꽤 많은 내용을 타자 치느라 많은 시간이 소요 되었지만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기도 하고,

나중에 또 보면서 책의 내용들이 생각 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다.


* 책에 대한 다량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므로 매우 주의를 요함




고민은 무거워도 행동은 가볍게. 거창한 질문 앞에 우리의 행동은 사소한 것 부터. 이것이 한 점 중심에서 네가 출발할 수 있었던 이유야. 우린 확신때문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야. 자유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지. 자신의 삶이 하나의 알리바이(이세상은 어떻게 해도 변하지 않는다는)에 불과하길 원치 않으니까. (p21)

우리는 (아직 존재해본 적 없는)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다른 사람' 처럼 되기 위해서 너무 많은 시간을 쓴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른 사람'과 비슷해지기 위해서 너무 많은 시간을 쓴다. 우리는 이 사회가 요구하는 바로 그 사람이 너무 빨리 되는 바람에 치열하지도, 창조적이지도, 타인에게 영감을 주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피로는 있다. 어중간한 존재로 살아가는 것의 피로와 쓸쓸함. 그러나 희망은 있다. 우리에겐 피가 흐르는 심장이란 게 있으니까. (p36)


(왼쪽 위부터 순서대로 자연 다큐감독 박수용, 영화감독 변영주, 만화가 윤태호, 야생영장류학자 김산하, 

청년운동가 조성주, 사회학자 엄기호, 정치경제학자 홍기빈, 천문인마을 천문대장 정병호, 저자 정혜윤)


자연 다큐감독 박수용

우리는 인생에서 이룬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는 인생 전체가 중요하다는 것, 매일매일이 불행하다가 어느 한 순간 찬란하게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 (...) 보람이란 것을 어떤 핵심적인 것, 본질적인 것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겐 꽃 이름을 아는 것 보단 어디선가 꽃이 피고 있음을 잊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눈이 내리면 눈이 내리는 걸 느껴야 합니다. 낙엽 하나가 떨어져도 낙엽이 떨어지는 걸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릴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이세상은 경쟁이 너무 치열합니다. 우린 그럼 어쩔 수 없지. 하면서 그 안에 들어갑니다. 그러다가 잊습니다. 내가 원래 뭘 하고 싶어 했던가, 이것을 잊습니다. 나는 선택을 해야 할 때마다 오솔길과 변두리의 철학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슴 뼈를 떠올립니다. 나는 밤길을 걸으면서 낮 동안 일어났던 일을 사소하게 느꼈던 그 시간을 잊지 못합니다. 낮의 사소함과 사슴뼈의 의미는 선택과 행동의 순간에 내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무엇이 나에게 중요했었고 뭐가 사소했던가? 어떻게 하면 후회하지 않을 시간을 살 것인가? 하지만 나는 또한 모든 개체는 먹고 살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는 것 또한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너무 큰 것을 요구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높은 기준을 요구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서로 다른 이 두 생각이 내겐 정반합의 세계로 이해됩니다. 현실적인 조건 즉 인간의 규칙과 내가 따라야 할 자연의 규칙들 사이의 소통, 이것이 내겐 진정한 마음속 소통입니다. (p50, 52)

버티는 약자들이 좀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게 하는 약속입니다. 우리는 현실 때문에 비참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을 위해서 버텨야 할 지 모를 때 비참해 집니다. 지금은 누군가 버틴다는 것이 우리를 버티게 합니다. 버티는 약자들이 우리를 버티게 합니다. (p74)

까뮈는 "나는 비참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비참하진 않았다. 나에게는 태양이 있었다."라고 말했지요. 비참과 태양 사이에서 그는 태양 쪽으로 걷고 싶어 했습니다. 태양이 있는 쪽으로, 빛 쪽으로, 또다시 빛 쪽으로 결코 눈을 떼지 않고 그러나 환상은 없이. 그렇게 걸음을 걷는 것이 우리의 삶이었으면 좋겠습니다. (p77)


영화 감독 변영주

'내가 가장 불쌍한 것이 아니라 서로 불쌍한 것이다. 서로 불쌍함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 한 테 위로 받는 것 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바꾸기로 했습니다. 내가 나를 위로하기로 했습니다. (p98)

듣다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싫어요"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당신을 더 잘 알게 되나요?"란 질문이 가능함을. 그리고 그 질문의 힘을. (p99)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진심 어린 갈망 중 하나는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불을 켤 때, 밤에 눈을 감을 때, 아침에 눈을 뜰 때 우리는 내일은 좀 달라지길 꿈꿔보는 것입니다. (p108)

인간은 이백 년은 살아야 한다고. 그 이유? 적어도 백 년은 배워야 하기 때문에.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백 년은 열렬히 들어야지 나머지 백 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금 알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인간에게는 엔진도 나침반도 필요합니다. 최초의 엔진, 변함없는 나침반은 누군가에게 배우려 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백 년씩 배우기만 할 수 있는 시간은 없습니다. 우리의 촛불이 한 권의 책을 이해하기도 전에 꺼져버리지 않도록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배우면서 살면서, 살면서 배우면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서로를 알게 된 것을 나눠 갖는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눠 갖는 것이 '힐링'입니다. 힐링이란 말이 유행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위로는 서로의 지혜를 나눠 갖는 순간 발생합니다. (p109, 110)

나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실제로 내가 아닌 것이 되어 생각한다는 것. 이것이야 말로 자기와의 거리 두기입니다. 이 거리 두기에서 관찰이 가능해집니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지 이 위기의 시대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의 구경꾼, 평가자, 심판자로 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자기 비하 없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 어떤 점에서 유일한지도 알아야 하고 인간 공통성도 알아야 합니다. 이런 판단 능력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다시 알게 합니다.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도 다시 알게 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뭔가에 제대로 반응하는 인간이 되어갑니다. (p115)


만화가 윤태호

존재감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존재감을 얻기 위해 언제까지고 시시덕거리며 비위나 맞춰주고 있을 수만은 없단 걸요. 나도 내 말을 해야 하는 구나. 그래야 상대방이 편안해하는구나. 내가 자존감을 갖고 있어야 사람들이 나와 함께 있는 것을 진짜 기뻐하고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받아들이겠구나. 저 역시도 제 친구가 대단히 훌륭할 때 어쩐지 저까지 존중 받는 느낌이 들곤 했었으니까요. (p144)

우린 보통 확신이 있어야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움직임은 확신이 아니라 질문에서 나옵니다. (p151)

우리는 대체로 원인과 결과를 착각합니다. 내가 원래 그래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 이렇게 행동을 해서 그렇게 된 것 입니다. 사람은 신념에 따라 행동한다는데 행동 때문에 신념이 만들어진다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p153)


야생영장류학자 김산하

자기 것에 사로잡혀있지 않거나 자기 것을 갖고 있지 않아야 딴 걸 볼 수 있습니다. 생물은 매일매일 인풋이 필요합니다. (...) 들어가고 나오고 또 채워지고 비워지고 정체되지 않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이디어의 원천인 셈이고, 이 흐름이 표현의 의지를 키우고 생명력이 됩니다. (p169)

저에겐 항상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습니다. 계획을 인조적으로 만들어간다. 이것이야말로 나답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OO이 될 것이다. 나는 언젠가 OO이 되기 위해서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 미래 완료형 때문에 희생을 치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p171)

제겐 제 자신을 키우는 방법이 있습니다. 저에게 과제를 부여하는 겁니다. 어떤 과제냐면 하나의 동물을 관찰하듯 자기를 관찰한다는 겁니다. 우리들이 여러 가지 문제에 시달리고 있지만 다른 생명체가 그러하듯 우리 인간에게도 자기한테 맞는 해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해법을 찾는 제일 좋은 방법은 자기의 원래 관심사에 집중해보는 것입니다. 자기의 원래 관심사란 것마저 불투명하게 되어버렸다면 어린 시절의 자기로 되돌아 보는 겁니다. (p181)

저에겐 삶의 디테일이 중요합니다. 왜 디테일 이냐고요? 그건 간단합니다. 우리는 결국 디테일로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정책 결정권자도 아니고, 우리가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삶의 디테일뿐입니다. (p183)

인간 한 명 한 명이 다른 인간의 마이크로 하비타트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쉴 만한 곳, 살아갈 곳이 되는 거죠. 자신의 친구나 애인에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한 사람이 하나의 마이크로 하비타트가 될 수 있습니다. (p185)

인간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밀고 나가려면,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소중한 존재로서 인정받았던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인정과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용기를 내기가 힘듭니다. (...) 적어도 한 사람은 자신을 인정했었다는 것이 사람에게 주는 자신감 그 이상입니다. 자기를 뛰어넘게 합니다. 세계가 바뀌는 겁니다. (p185)

사소하지만 영원한 의미를 지닌 방식으로 서로 신경 써주는 사람들이 이 도시의 서식지, 마이크로 하비타드입니다. (p189)


청년운동가 조성주

'눈에 밟힌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지 알게 되었어요. 그건 말이야 잊을 수 없단 말이야. 눈으로 보지 않아도 저절로 생각난다는 말이야. 그러다 결국 내 눈만이 아니라 그 눈으로 온 세상을 보게 된다는 말이야. 그러니 눈에 밟히는 게 늘어나면 더 많은 눈동자를 갖게 된다는 것이 아주 틀린말은 아니었던 거야. (p200)

'나에게는 수많은 눈이 있다. 그래서 외로울 틈이 없다.' (...) 수많은 눈이 있다는 것은 근심 걱정하고 슬퍼하고 기뻐할 일이 많아 진다는 뜻도 됩니다. 그런데 진짜 외로운 것은 나말고 달리 걱정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p201)

지난해 그리고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를 휩쓰는 모토는 '아프니까 청춘'입니다. 저희도 아픈 청춘 입니다. 그러나 저희의 모토는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아닙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자.'입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에 따르면 청춘 시절에 고통스러운 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가면 잊히고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겪는 아픔은 통과 의례가 아니고 구조의 문제 입니다. 우린 시간이 흘러 청년이 아니어도 아플 것입니다. 우리가 낳는 아이들이 아플 것입니다. 이 아픔은 가만히 있으면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저희는 "아프면 소리질러라. 같이 소리지르자!"라고 합니다. 저희들은 그럼 바뀌는 게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p220)

그는 인생의 한때 시간을 자기 자신에게 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어요. 제겐 이 말의 의미가 각별하게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시간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상을 임시적인 것으로 간주합니다. 현재는 참고 견디면 되는 시간에 불과합니다. 현재는 별 가치가 없습니다. 중요한 일은 오늘이 아니라 내일 일어납니다. 훗날 일어날 일이 우리 현재를 보상해줍니다. 우리에겐 미루어두는 것이 있습니다. 우린 내일은 나아지리라 라는 기대 때문에 문제를 직면하고 그것을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일을 미루고 미룹니다. 현재가 소중하다는 말의 의미는 추락합니다. 현재는 뭔가를 준비하는 시간에 불과하고, 절제의 시간이고 인내의 시간입니다. (...) 미루기 때문에 우리는 중년이 되어도 아픕니다. 노년이 되어도 아픕니다. (...) 미래는 현재를 경험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현재를 경험하지 못하게 하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다르게 볼 수 있게 하는, 현재를 바꾸는 미래여야 합니다. (p226, 227)

우린 찾고자 하는 것만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우리가 찾으려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우리는 영원히 무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린 보고자 하는 것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필요한 질문은 '우리가 보지 않으려 했던 것에, 그 세계와 삶에 어떤 중요한 비밀이 있을까?"하는 것입니다. (p229)


사회학자 엄기호

인간은 존엄한 것이 아니라 존엄해지려고 하기 때문에 존엄하다고 말했습니다. 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의미로 가득 차있기 때문에 의미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의미를 찾으려 하는 한해서만 의미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존재하려고 발버둥 치는 한에서만 그럴 것입니다. 우린 이 모든 것을 말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더욱 말이 중요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작과 끝에 갇혀있습니다. 단기 목표 달성형 삶 속에선 더욱 그렇습니다. 철저하게 사회적 기대에 갇혀있으면서도 희망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 자아에 갇혀서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 고백이라 하면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과장하는 것과 자신의 드라마밖에 알지 못하는 사람, 현실의 한계와 고통과 불만족에서 의미를 끌어내려 하지 않고 피하려고만 드는 사람, 세계와 자신이 변화해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고 용기를 내보지 않는 사람, 삶은 주어진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하는 사람, 함께 추구해야 할 목표를 갖지 못하는 사람, 타인을 경쟁자로만 여기는 사람, 남이 욕망하는 것만 욕망하는 사람은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말과 이야기를 갖지 못합니다. 이야기가 사라진 자리에 옮겨간 직장, 이사한 집들, 연봉의 금액 이런 것들만 남습니다.

우리가 말을 하고 듣는 이유는 그 말 안에 해답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말하고 듣는 동안 우리는 어떤 것이 어떻게 말해져야 하는지 배우게 됩니다. 우린 열린 마음을 가진 자들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열린 마음이란 단지 관대함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서져 열리는 것입니다. 맘에 담아 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타인이 내게 열어 보인 마음은 내 마음 위에 두어야만 한다고 합니다. 어느 날 그 맘이 내 안에 들어올 때는 내 것을 열고 부수고 들어옵니다. 우리가 좋은 책을 읽을 때 그 글귀들이 우리 맘위에 눈부시게 쌓여있다가 어느 날 우리 마음에 들어오는 것과 같습니다. (p261, 262)


정치경제학자 홍기빈

현재와 미래는 변증법적 관계입니다. (...) 현재는 미래가 있기에 존재합니다. 미래는 현재와 동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불안 때문에 우리는 미래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상태가 돼버립니다. (p282)

뭔가가 불안하면 아무런 대책을 세울 수가 없습니다. 불안은 무기력과 무감각을 불러오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 지루해집니다. (...) 멍하게 무슨 일이 일어날 때까지 속수무책으로 기다리는 것밖에 할 일이 없습니다. 손발이 묶인 채 괴물이 다가오는 것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가난이 아니라 무기력이 사람을 무능력하게 합니다. (p282, 283)

사람들은 각자 자기 삶을 의미 있게 하는 뭔가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 누군가에게는 가족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신념일 수도 있고, 거기에 무슨 우열이 있겠습니까? 자기 삶에 미션이란 것. "그걸 포기하면 내 인생은 끝이다." 그런 게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p284)

현재는 미래와 서로서로 만들어가는 관계에 있습니다. 실제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 어떤 열망으로 가상의 미래를 생각하는가. 그것을 위해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실제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p293)

불안을 없앨 수 없다는 걸 깨달으면 불안이 많이 사라집니다. 불안 없는 삶을 꿈꾸기 때문에 불안해집니다. 인류 역사에 인간이 불안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불안은 삶의 일부분입니다. 불안과 어떻게 친구가 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p295)

완전한 의미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그 의미에 이르기 위해서 우리는 일상적인 삶이란 언덕을 끝없이 오릅니다. 그 점에서 우리는 시지프스의 후예들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뭔가 해보자.' 이런 작은 실천, 작은 믿음에서 나온 작은 실천 들이 우리를 살립니다. (p301, 302)


천문인마을 천문대장 정병호

그가 그렇게 별을 보러 다니면서 하지 않은 일이 한 가지 있었어요. 자신을 남에게 맞추는 일, 그는 그것만은 결코 하지 않았어요. 그가 요새도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함께할 사람이 없어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시작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원하면 일단 시작하라!'그게 그의 신조였어요. (p308)

세상 모든 것은 아는 만큼 보이고 계속 계속 더 보려 할 수록 더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 '이 우주엔 도저히 일일이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것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다 볼 수 없지만, 보려고 하고 애쓰며 사는 것 그 자체로 숭고한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하는 것은 숭고한 것이다.' (p314, 315)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아무리 어둡더라도 결국은 보인다.'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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